우리 연수구의 역사입니다. 연수구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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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2의 설명
비류왕국이 탄생한 BC 18년보다 훨씬 이전인 신석기시대부터 우리 고장에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문학산 일대는 비류왕이 세웠다는 비류백제(일명 미추홀왕국, 미추국)의 도읍지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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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4의 설명
통일신라 말기부터 우리 고장은 소설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새로운 이씨(인주이씨)들이 탄생하였고 이들 이씨들은 문학산 주변 연수동, 선학동, 문학동 일대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고려시대를 맞이하게 되며 고려시대 초·중기 7대 임금에 이르는 약 100여년간 인주이씨들은 고려조 최대의 가문으로 번성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 인천도호부가 관할하는 지역은 모두 10개면이 있는데 지금의 연수지역 대부분은 먼우금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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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의 설명
1906년 6월 행정조직에 대한 개편작업으로 먼우금면이 서면으로 개칭되었고 1930년 일제는 인천의 행정구역을 확장했는데 이때 문학면의 일부(옥련리)와 다주면(주안일대) 대부분을 인천부에 편입하였습니다. 옥련리가 이때 송도정이라는 왜식지명으로 바뀌게 되었고, 연수리는 연수정으로, 동춘리는 동춘정으로, 도장리는 무학정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8·15해방 이후 1945년 11월 연수지역은 인천부 문학지청의 관할이 되었으며 1946년 1월 1일부터 옥련동, 동춘동, 선학동으로 왜식지명을 변경하여 오늘날의 동명을 갖게 되었고 1968년 인천시가 구제를 시행함에 따라 연수구 각동 전체가 남구 관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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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7의 설명
비류왕국이 탄생한 BC 18년보다 훨씬 이전인 신석기시대부터 우리 고장에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문학산 일대는 비류왕이 세웠다는 비류백제(일명 미추홀왕국, 미추국)의 도읍지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