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이 빼앗아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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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문영현
- 작성일
- 2005년 11월 9일
- 조회수
-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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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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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출동 미담사례)
지난 2005년 11월 7일 밤
벽에 걸린 시계가 22:50분경을 가리키고 있을 때였다.
휘이잉----워어엉----
초저녁부터 불기 시작하던 바람은 밤이 깊어갈수록 점점 더 울부짖는 듯한 바람소리로 변해갔다.
사무실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부러질 듯이 강한 기세로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 일기예보에 태풍 온다고 했어?”
“추워진다고는 했는데 날이 갑자기 왜 이러지...”
“오늘도 간판 떨어지려고 한다는 신고가 엄청 들어오겠다. 출동준비나 하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천소방방재본부 상황실로부터 출동지령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강한 바람이 연수동과 동춘동 지역을 빠르게 휩쓸고 지나갔다.
“바쁘신데 이런 사소한 일로 119에 신고해서 죄송합니다. 저희집 베란다 창틀이 떨어지려고 해요”
대원들은 신고가 들어온 동춘동 삼성아파트 16층으로 올라갔다. 베란다의 대형 창틀이 강한 바람에 1층 화단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지나가다가 크게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대원들은 유리창 압착기와 대형 드라이버 등 공구를 이용하여 아파트 베란다의 유리창틀을 틀에 맞춰 움직이지 않게 안전하게 고정시켜 주었다.
하지만 주민들의 119 요청은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연수동 우성아파트였다. 베란다의 대형 유리창이 강한 바람에 금이 가서 아파트 아래로 떨어져 날릴 것 같아 깨진 유리에 테이프를 발라가며 안전하게 떼어내는 등 조치해 주었다.
강한 바람은 계속 세력을 더해가며 남동구로 빠르게 올라갔다.
이번에는 남촌동 211-33번지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 시각 퇴근준비를 서두르던 ‘남촌꽃도매’ 화원의 허정(남,51세) 형제는 생화를 물에 담아두는 물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여보! 바람 부는게 심상치 않아요! 가로수 나무가 부러지려고 하니까 오늘은 그만하기로 해요. 화원 출입문 닫을께요.!”
아내 김미숙(여,42세)이 딸 허아름(여,10세)을 화원 안에 만들어놓은 임시거처에 앉아있게 한 뒤 화원 출입문 쪽으로 나가고 있을 때였다.
우당탕----번쩍! 도로변의 전신주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순식간에 화원 주위로 강한 회오리가 밀려왔다.
땅에 깊이 박혀있는 하우스 설치대가 뽑히고 화원 안에 있던 수백 개의 화분과 책상, 냉장고를 포함한 집기류가 모두 돌풍에 휩쓸려 날아가는 것이었다.
책상 서랍 속에는 장사에 보태쓰려고 은행에서 인출해 온 현금이 100만원도 넘게 들어 있었지만 무서운 자연재난 앞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이 두 눈 뜨고 고스란히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순간 김씨는 너무 황당해서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올 봄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를 당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뒤 다시 힘겹게 시작하고 있는데 또다시 재난이 모든 것을 휩쓸고 가니 눈앞이 깜깜해지고 온몸에 힘이 빠져버리는 것 같았다.
“엄마! 무서워...”
김씨는 엄마를 부르며 애타게 울부짖는 아름이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름아!”
김씨는 아름이가 있는 곳으로 죽을힘을 향해 달려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딸에게 옆에 놓여있는 이불을 덮어 아름이를 품에 안고 바닥에 엎드렸다. 잠시 후 화원 주변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회오리가 지나간 시간은 길지 않았다. 불과 10-15초 였다.
잠시 후 붕괴된 화원에 깔려있던 남편과 시동생이 빠져 나오면서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 없이 모두 무사했다.
그나마 하우스 가건물에 깔렸기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남촌꽃도매’ 뒤쪽에서 거름공장을 운영하는 문진(남,51세) 사장님의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날아간 냉장고에 맞은 것이었다.
“빨리 119불러요!”
사고현장에는 남동공단소방서119구조대, 도림파출소, 구급대가 출동하여 환자이송과 추가 인명검색을 실시하였다.
사고현장은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
거대한 폭탄이 떨어진 것 같이 온통 파괴되고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화원 일대가 모두 붕괴되었고 가로수와 가로등도 뽑히거나 부러진 채 거리에 나뒹굴고 있었다. 주차된 화물차는 3대가 날아가 논두렁에 뒤집혀 있었다.
가스충전소의 담벼락도 모두 무너져 내렸다.
구조대 및 도림파출소 소방대원들은 붕괴된 화원 주변의 인명검색을 마치고 돌풍에 파괴된 건물 잔해물 들을 일부 치우기 시작했다.
가스충전소 건물에서 찢겨져 나온 캐노피(철판 판넬)가 충전소 시설물, 전선줄, 전신주, 가로수에 빨래를 널어놓은 것 같이 걸려있어 또다시 바람이 불어오면 2차 안전사고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 구조차 크레인과 복식사다리, 한전 작업차 등을 이용하여 모두 제거한 뒤 안전한 장소로 옮겨 놓았다.
예측 할 수 없는 자연재난에 큰 피해를 입은 화원들과 가스충전소가 하루빨리 정상 복구되어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구조대 사무실로 돌아온 시간은 새벽 1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 인천남동공단소방서119구조대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