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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수기-어머니에게 환한 웃음을

  • 작성자
    노을
    작성일
    2005년 3월 17일
    조회수
    1457
  • 첨부파일

국민연금 수기-어머니에게 환한 웃음을

명 혜 자/서울시 영등포구 대림1동


내 고향은 전라남도 고흥에 있는 '나로도'라는 작은 섬마을이다. 작은 섬이라 육지와의 교통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경제 형편상 공부를 계속하기 힘들어 오빠를 따라 서울에 올라와 공부를 하였다.


부모님은 작은 농사를 짓고 틈틈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 생활을 하시며, 일년에 한번정도 풍요롭지 않은 살림에 부모님이 손수 농사지은 곡식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시던 부모님이셨다. 비록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지만 아버님은 틈틈이 지은 농사수입과, 고기잡이로 번 수입을 저축하여 작은 배 한 척을 장만하시고 이배로 통발문어잡이를 하시며 정말로 열심히 생활하시던 아버님이셨다. 어머니는 새벽 2시면 일어나 바다에 고기 잡으러 나가시는 아버지를 위하여 도시락을 장만하시고 아버진 혼자서 바다에 나가시는 것을 못내 걱정하시며, 아버지와 함께 새벽 고기잡이를 다니시며 육십평생을 항상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시던 금실 좋은 부부셨다. 조그만 섬의 어촌에서의 생활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이 못 되는 상황이라 노후에 대한 걱정만 앞설뿐 하루하루가 바쁜 나날이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1995년 7월 농어민 국민연금이 실시되었다. 당시 동네 반장님 일을 보시던 66세이셨던 아버지는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래도 노후를 생각해서 어머니를 특례노령연금에 가입토록 하였다. 이사실은 엄마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아버지는 새벽 뱃길에서 통발문어잡이로 생긴 돈으로 국민연금을 꼬박꼬박 납부하셨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감기에 약 한번 드신 적 없고, 한겨울에도 냉수로 목욕을 하실만큼 건강에 자신 있어 하시던 아버지는 갑자기 임파선암을 선고 받으시고 3개월 만에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나는 아버님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가정형편은 어려웠지만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만 되면 된다'고 자식을 가르치시던 아버지셨는데… 큰오빠의 이혼으로 어린 손자를 세 살 때부터 데려다 키우면서도 남한테 욕먹는 일 안 시키며 꿋꿋하게 키우셨던 부모님. 아버진 자식들보다 그 소중한 무엇보다 끔찍이 키우시던 손주를 끝까지 가르쳐야 된다는 유언을 남기시고 떠나셨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문득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닦으시는 어머니는 잊어야지 잊어야지 하면서도 아버님을 그리워하시었다. 아버님이 잡으신 문어랑 덩달아 잡힌 장어랑 꽃게를 시골장터 상인들에게 계산도 않고 넘겨준 돈으로 세금도 내고, 장날 돼지고기도 사고, 손주녀석 새 옷도 사고, 뒷바라지 하셨는데…손자 때문에 살아야지 살아야지 하며 가끔 우리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진 몇 달이 걸리셨다. 하지만 어머니가 기운을 차리셨을 때는 아버지가 안계시니 어디 돈 나올 때 라곤 한군데도 없고 가끔 자식들이 찾아가 용돈 드리는게 수입원의 전부였다. 세 살짜리 손자가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가르쳐야 하는데 하시며 말을 흐리시지만 어머님의 마음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기에 막막하기만 할 뿐이었다.


매월받는 국민연금으로 손주 등록금 주시는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개월이 지난 어느날 국민연금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 동안 국민연금 가입하시어 꼬박꼬박 연금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한 것에 감사 드리고 다음달부터 특례노령연금이 지급되니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여 달라는 국민연금 직원의 전화 연락이었다.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던 일이였는데 말이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쁜 마음을 자랑하시었다. 어머니는 그 다음달 우체국을 다녀와서 국민연금이 들어오는 우체국 통장을 어루만지시며, "니 아버지 덕분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우리 손주 공부는 가르치겠다" 한없이 우셨다.

벌써 국민연금을 11개월째 받고 있는 어머니는 매달 버스로 30분 되는 거리를 걸러서 국민연금이 들어오는걸 확인하는 즐거움이 생기셨다. 큰돈은 아니지만 몇 개월 모아두면 손주 등록금을 낼 수 있어 너무 든든하다는 욕심 없으신 어머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있으시다. 이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손주 운동화며 새 옷을 사러 시장에 가시곤 한다. 그리고 올 가을엔 서울에 오셔서 당신 손녀딸들에게 아이스크림 사먹으라고 천원짜리 두 장을 건네 주셨다. 나는 많지는 않지만 용돈을 몰래 가방에 넣어두고 엄마가 주시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감사히 받게 했다.

나는 동네 마을문고에서 봉사를 하다가 관장님의 권유로 국민연금과 첫 인연을 맺은 지도 2년이 되어 간다. 지금은 국민연금 홍보 일을 하고 있다. 아직은 국민연금에 대해 풍부한 지식이나 홍보가 부족해 안타까움도 많지만 내 부모나 우리 세대들의 미래 노후를 위해 강요나 설득이 아닌 자발적인 국민연금 참여로 우리 모두가 함께 더불어 잘 사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국민연금 홍보 일을 하면서 연금제도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을 때 훗날 용돈이라도 되시게 남편 국민연금을 가입하면서 시어머님 연금도 가입해 드렸다. 매달 통장으로 국민연금이 빠져 나가는 걸 확인하면서 3년만 지나면 국민연금을 받아보시며 흐믓하실 시어머님을 생각하니 난 큰 효도라도 한듯 마음이 뿌듯해진다.

오늘도 전화선을 타고 가입자 한분 한분께 내 진실을 전하고 국민연금이 아버지가 안계신 자리를 대신해 엄마와 조카를 지켜주듯 모두에게 큰 버팀목이 되었으면 한다. 여름휴가 때면 아직도 바닷가 선착장에 묶여있는 아버지의 배를 보며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는 국민연금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그 약속을 믿는다.

(국민연금 싸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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