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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깃든 영혼

  • 작성자
    최지훈
    작성일
    2005년 6월 23일
    조회수
    1939
  • 첨부파일
산에 가거나 가로수를 거닐다 보면 나뭇잎을 뜯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약초로 쓰기 위해 뜯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무심코 뜯는다. 그냥 그 잎을 땅바닥에 버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동네 산보중에 아이들 놀이터에 들렀다. 아이들이 나무가지를 붙잡고는 잎을 뜯으며 놀고 있었다.

"얘들아, 나뭇잎을 그렇게 뜯으면 어떡해? 나무도 아프잖아."

"나무도 아파요?"

"그럼, 나무도 아프지. 그렇게 흔들어대고 마구 뜯는데 아프지 그럼 아프지 않겠니?"

아이들은 어렸다. 금세 내 말에 동조하는 눈빛을 보인다.

동네 뒷산. 내앞에 가는 아주머니가 계속 나뭇잎을 뜯으며 걸어간다. 눈에 거슬린다.

"아주머니, 나뭇잎을 그렇게 뜯으시면 어떡해요?"

"... .... "

아주머니는 아무 말도 안하고 나를 쏘아보더니 휭하고 다른 길로 가버린다. '어머머 별꼴이야'

나무를 포함한 식물은 동물과 달리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을 드러내는 법도 없어 보인다. 사실은 그들 나름대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데, 인간들이 알지 못할 뿐이지만.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 인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식물에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꽃을 피우고 잎을 늘리고 낙엽을 만들고 다시 뿌리와 가지만 남는 그들속에 신의 정령이 자라고 있다고 믿었다.

식물 한 포기, 나무 한그루를 자를 때도 반드시 예를 갖추었다. 신을 노엽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알았다. 그 어떤 식물이나 나무도 자신들보다 오래 산다는 것을. 그 영험함을 나누어가지기 위해 식물과 나무를 위하고 또 위했다.

도시가 들어서고 식물과 나무의 풍성함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자연에서 멀어져갔다. 온갖 인공물에 둘러싸여 별탈없이 아니 더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배워나갔다. 그들에게 놀이터와 동네산에 있는 나무는 한낮 전시물에 지나지 않는다. 심심풀이로 잎을 따고 심지어 가지를 부러뜨려 장난을 해도 뭐라 그러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들에게 나무는 그저 인공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무는 알고 있다. 자신의 잎이 사라지고 가지가 부러진 것을 온 몸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주변 나무들에게 속삭인다. 인간이란 족속은 절대 믿을게 못돼. 그들이 가까이오면 경계근무를 발동해야 해. 심지어 나무들은 자살을 기도한다. 더이상 인간들의 손때가 묻은 동네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한 나무들은 뿌리째 썩어들어간다. 그리고 꽃씨를 날려 인간들이 살지 않는 먼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저 뿌리가 있고 가지가 있고 잎을 피운다고 해서 다 나무인 것은 아니다. 도시의 나무들은 이미 다 죽어있다. 그것들은 그저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들은 아쉬워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말해 인류가 다 망해도 그들은 어디에선가 살아남을 거니까. 인간들만 모른다. 나무들이 인간에게 받는 혜택보다, 나무들이 인간에게 주는 도움이 더욱 많다는 것을 말이다.

나무들이 사라진, 아니 겉으로만 나무라고 보여지는 인공나무가 늘어선 거리에서 사람들은 또 잎을 따며 지나간다. 그들에게 나무는 영혼이 깃든 식물이 아니라 기껏 장난감일 뿐이다. 그런 사람의 머리에는 영혼이 자리잡을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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